보전과 매향리 갯벌: 탐조와 인터뷰 (2)

글: 한제인

2025년 8월 23일, 나는 경기도 화성의 끝자락에 있는 매향리 갯벌에 서서 땡볕에 아지랑이가 이는 진흙 위로 망원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날 우리의 주된 임무는 철새의 개체 수를 세는 일이었다. 태양 아래 한곳에 멈춰 선 채 긴 시간이 흘러갔고, 나는 땀에 흠뻑 젖으며 움직이는 점들이 도요새, 마도요, 저어새 무리로 바뀌는 것을 관찰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수십 년 간 습지가 인간과 새 모두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고민해 오신 나일 무어스박사님과의 만남과 이야기가 나를 사로잡았다. 

1) 고요가 경이로움을 만들고, 경이로움이 지지를 만든다

망원경 너머로 마도요 한 마리가 갯벌에 내려앉는 순간, 잠깐의 경이로움이 찾아왔다. 그러나 잠시 후 우리가 서있던 곳으로 트럭이 요란하게 지나가자 그 순간은 산산이 흩어졌다. 그러자 나일 무어스 박사님은 정책 변화가 왜 중요한지 설명해 주셨다. 처음 그곳에서 마도요를 목격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경이로운 순간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트럭이라는 위험요소가 나타나 좁은 길에 서있던 사람들이 차를 피하기 위해 길에서 비켜나 자리를 옮기고 나면 마도요를 만났을 때의 감탄했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기는 어렵다.

만약 새들을 관찰할 수 있는 그곳이 늘 소음과 방해 요소, 위험으로 둘러싸여 있다면 사람들은 새를 보면서 그 진정한 가치에 몰입하고 그 순간을 만끽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안전하게 발을 들여 놓고 관찰할 수 있는 제대로 된 공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박사님은 안전한 전망대, 작은 관찰소, 앉아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고 이는 작고 간단한 디자인 개선으로도 가능하다고 하셨다. 그래야 방문객들이 방해 없이 새를 볼 수 있고, 그 경험을 통해 가치가 자리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 화성의 과제는 단지 새를 보호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사람들이 이곳에서 안전하게 방해받지 않고 머물러 새들을 바라보고, 무엇이 진정 중요한 것인지 보고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설계하는 일이다. 

넓적부리도요 – 왼쪽은 화성에서 보았던 모습, 오른쪽은 다른 곳에서 정면으로 본 모습! © 나일 무어스

2) 희귀한 새 한 마리가 세상을 의미 있게 만든다

어떤 습지가 ‘국제적으로 중요한 지역’인지의 여부는 람사르 협약 기준에 따라 결정된다. 2만 마리 이상의 물새가 서식하거나, 개체군의 1% 이상을 수용하는 습지는 국제적으로도 중요한 지역으로 지정된다. 이곳 화성은 이 기준을 충족하는 곳이다.

이러한 정의는 망원경을 통해 노랑부리저어새를 보았을 때 실감이 났다. 내가 본 것은 전 세계에 400여 마리 밖에 남지 않은 새였다. 파도선을 따라 바삐 움직이는 그 작은 새를 본 것은 현실을 초월한 경험이었고, 나에게는 그 새 한 마리와의 만남이 전체 생태계가 맞고 있는 위기의 긴급성을 실감하게 하는 순간이 되었다. 

3) 사람과 새가 공존하는 공간

보전은 종종 ‘희생’으로 여겨지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나일 무어스 박사님은 영국 마틴 미어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이곳은 한때 농민들이 농작물을 먹어 치우는 골칫거리였던 기러기를 총으로 쏘아 없애려 했던 곳이다.

“그래서 어떻게 했을까요? 그들은 사냥 대신 그곳을 보호 구역으로 만들고 농민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했습니다. 농민도 행복했고, 기러기도 행복했습니다. 방문객들은 이곳에서 ‘와, 새들은 정말 환상적이구나’라고 느꼈지요.”

화성에서도 비슷한 해법이 가능하다. 펜션이나 카페, 생태 교육과 연결된 탐조 활동은 지역 주민들에게 자부심과 생계를 동시에 키워 줄 수 있는 해결책이다.

4) 땀, 숫자, 그리고 벽의 높이

매향리에서 우리의 구체적인 임무 중 하나는 새들이 새로운 ‘블루카본’ 방조제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관찰하는 것이었다. 만조 90분 전부터 우리는 거리측정기로 무리들이 얼마나 가까이 앉는지를 측정했다. 방조제가 새의 눈높이보다 높게 세워지면 새는 다가오는 위험을 볼 수 없어 그 자리를 피하게 된다. 그러나 파도를 막을 만큼의 높이로만 낮춘다면 새들은 그곳에서 안전하게 먹이 활동과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데이터는 일방적인 ‘철거’가 아닌 ‘높이 조정’이라는 해법을 제시할 수 있게 한다. 땡볕에서 땀을 흘리면서 움직이는 새들을 세는 일은 힘들고 지루할 수 있지만, 이러한 수고가 쌓여 수천 마리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설득력 있는 증거가 확보되는 것이다.

조사를 마칠 즈음, 나는 보전이 단순한 ‘행동’이 아니라 ‘해법 찾기’라는 말에 공감하게 되었다. 행동은 당장의 문제만을 해결할 수 있지만, 해법은 문제 자체가 반복되지 않도록 환경을 바꾸게 한다. 숫자는 당면한 문제를 볼 수 있게 하지만, 해법은 사람들의 가치와 습관을 바꾼다.

그날 갯벌에서 나는 경외심이 자리 잡을 때 비로소 우리가 그 가치를 실천하게 된다는 것을 배웠다.  과학은 증거를 제공하고, 경이로움은 그 증거에 무게를 실어준다. 결국 이 둘이 함께할 때 비로소 화성과 같은 습지가 살아남을 수 있고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갯벌에 가본 적이 없다면, 이곳을 방문해 망원경을 들고 조용히 한 시간쯤 앉아 보길 권한다. 게를 부리로 쪼는 마도요를 단 한 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해안을 바라보는 눈과 그것을 지켜야 하는 이유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글쓴이 소개]

한제인은 대한민국 송도에 위치한 채드윅국제학교에 재학 중인 고등학생으로, 지속가능성과 스토리텔링의 접점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동아시아-대양주 철새이동경로 파트너십(EAAFP)과 함께 지역 학교와 공동체를 세계적인 보전 활동과 연결하는 캠페인을 조직했고, 그가 속한 지역 내에서는 저어새와 친구들 봉사활동을 통해 철새 보전을 위한 지역 인식 제고와 교육 활동에 참여했다. 또한 미국 일리노이주 에반스턴에 있는 Clark Street Beach Bird Sanctuary에서 외래종 제거와 공공 교육 안내판 설치 활동에도 참여했다. 

이러한 보존 활동과 함께 그는 채드윅국제학교신문의 기자와 편집자로 5년째 활동하고 있으며, 미국 Medill Northwestern Journalism Institute에서 저널리즘 교육을 받고, 코리아중앙데일리에서 인턴 기자로 활동하며 언론 경험을 쌓고 있다.

저자의 이러한 글쓰기와 스피치를 통해 꾸준히 도시 개발과 생태 보존 사이의 균형에 대한 대화를 이끌어내고자 한다. 간척지 위에 세워진 신도시 송도에서 성장한 그는 저널리즘과 창작 글쓰기를 통해 철새들이 단순한 ‘지나가는 손님’이 아니라, 우리가 공유하는 지구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임을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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