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Archives: 10/08/2015

한국어 종명 작명법에 대한 논의

현재 저희 새와 생명의 터에서는 2014년 조류목록을 개정하여 3-4분기에 2015년 새와 생명의 터 조류목록을 완성하고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작년 2014년 조류목록을 발간한 이후에 새로이 발견된 종들도 많을 뿐만 아니라 정보 공유의 부족으로 인해서 숙지하고 있지 못했던 기록들에 접근할 수 있게 되면서, 기존에 존재하던 종들의 도래 및 번식 현황을 수정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어렵고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하는 부분이 신종의 한국어 작명입니다.

저희는 새들의 한국 이름 작명에 대해서 간단하게 두 가지 규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

1. 전세계에 서식하는 모든 새들은 한국에서 관찰될 가능성이 있으며, 이들 모두에 대해 한국명이 지어져야 한다.

2. 해당 종을 잘 나타낼 수 있는 ‘독특한’ 이름이여야 한다.

3. 지나치게 자주 사용되는 접두 & 접미사는 될 수 있는 한 지양한다.

4. 특이한 경우가 아닌 한, 선발견자의 작명을 우선으로 한다.

이 규칙들에 관해 간략히 설명드리겠습니다.

1번과 2번번 규칙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입니다만, 실제로 새 이름을 짓다보면 절대 쉬운 작업이 아닙니다. 다양한 한국어 표현법에 대해서도 숙지를 해야하는 것은 물론, 이름을 짓고자 하는 새와 비슷한 생김새를 가진 종들에 대해서도 꿰뚫고 있어야 합니다. 유사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새라 하더라도 어디에 포인트를 두는가에 따라서 다양한 표현방법이 사용될 수 있습니다. 보통 사용되는 방법은 해당 종이 포함된 분류군의 총칭에 접두사나 접미사를 붙여서 이름을 짓는 것입니다. 갈매기 과의 새들을 생각해보시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지어지는 이름들이 3번 규칙을 만족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현재 한국에는 500종 이상의 새들이 기록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혼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접두 & 접미사의 사용이 다소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일례로는 큰재갈매기작은재갈매기를 들 수 있습니다. 큰- 과 작은- 은 접두사로서 몸의 크기에 대한 상대적인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실제로 재갈매기와 비교해서 큰재갈매기는 몸집이 크며, 작은재갈매기는 다소 작습니다. 하지만 재갈매기도 암수 및 개체에 따라 몸집에 차이가 있을 수 있으며, 이를 표현할 때 이미 지어진 두 종의 이름과 혼동이 되기도 합니다. ‘오늘 동해에서 큰 재갈매기와 작은재갈매기를 봤어’라는 말을 구두로 들었을 때, 전자는 종명을 뜻하는 ‘큰재갈매기‘가 아니라 몸집이 큰 재갈매기이며, 후자는 몸집이 작은 재갈매기가 아니라 ‘작은재갈매기‘라는 종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혼동 없이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글을 적고 있는 저 조차도 헷갈립니다. 후자인 작은재갈매기는 캐나다갈매기라고도 불리고 있는데, 실제로 이 종은 캐나다 북쪽의 섬지방에서 국지적으로 번식하는 종으로서 몸 크기에 대한 접사 대신에 ‘캐나다’라는 접두사가 종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redc stonechat AP9F9348검은딱새 Saxicola stejnegeri ©Robin Newlin
예전의 한 종에서 현재는 4종으로 나뉘어진 이 새는 각 분류군 간의 외형적인 차이가 적지만, 서식하고 있는 지역 간의 특이성이 있어 지역 이름을 접두사로 사용하기에 좋은 경우입니다.

다른 예로는 접두사 북방- 이 있습니다. 북방- 은 북쪽이라는 방향성을 담고 있으며,  현재 아종명을 제외하고 북방- 접두사가 사용된 종명은 8종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종들 중에서 ‘북쪽’이라는 방향성이 해당 종만의 고유한 특징을 나타내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요? 북방개개비북방쇠개개비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해당 종의 특징을 얼마나 잘 반영하고 있다고 느끼시나요? 단순히 접두사만을 사용하지 않고 색상에 대한 정보를 덧붙여서 이름을 지으면 더 낫겠지만, 이를 지나치게 사용하다보면 새의 이름이 10글자나 되어버립니다.

이런 이유로 저희는 지나치게 자주 사용되는 접사를 지양하고 있으며, 새의 형태적인 특징만이 아니라 행동과 습성, 지역적인 특정을 주로 담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한계점이 있어 이번 2015년 개정판을 작성하는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작년 가을에 백령도에서 처음 기록된 Mongolian Lark입니다.

비교적 단순하게 지어진 영어명이며, 지역적인 정보외에 다른 것들은 담고 있지 않습니다. 이 종이 몽골에서 유일하게 서식하는 Lark가 아닌 것은 당연합니다. 현재 다양한 매체에서는 ‘큰흰날개종다리’로 불리고 있습니다만, 첫 발견자이신 Nial Moores 박사님은 아직 한국 이름을 명명하지 않으셨으므로 위의 4번째 법칙에 위배됩니다. 이 종은 날 때 둘째날개깃의 흰 부분이 뚜렷하게 보이므로 흰날개종다리라는 이름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이미 같은 종다리 과에는 White-winged Lark(마찬가지로 둘째날개깃이 흰색)라는 종이 존재하며, 두 종의 외형적인 특징은 판이하게 달라서 서로 연관성을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이들은 속도 서로 다른 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큰흰날개종다리’는 위의 법칙들에 잘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몽골종다리’로 명명해버린다면 중국 북쪽의 넓은 지역에서도 텃새로 번식한다는 사실을 반영하지 않게 됩니다.

이 외에도 많은 종들에서 새들의 특이성이 이름에 반영되지 않거나 현실과 어긋난 부사들의 사용(e.g. 한국밭종다리), 아직까지 한국에서 관찰되지 않은 종들의 훌륭한 영어명과 겹치는 이름 등 해답을 깔끔하게 내놓기 어려운 사안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에 대한 탐조인분들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저희가 제시한 규칙들이 실상과 너무 동떨어져 있거나, 의도치 않게 모순되는 점들이 발견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새들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으로서 여러분들의 의견을 여쭙고 싶습니다.